불교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성의 지혜가 필요하다

shinnybest 2025. 2. 17. 23:26

I. 해탈을 구하는 자는 공성의 지혜가 필요하다.

9:1 이전에 부처님이 설하신 모든 방편의 수행들은

궁극적으로, 공성의 지혜를

개발하기 위한 것이니

공성을 깨닫는 지혜가 있어야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네.

 

앞선 8품에서 여러 바라밀을 설하신 것은 수행자가 번뇌장과 소지장을 끊고, 실상 지혜를 발하여 원만히 과위를 증득하게 하기 위함이다. 앞선 5바라밀이 보리의 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혜바라밀을 얻어야 한다. 번뇌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보리를 장애하는 번뇌장과 완전한 깨달음 즉 성불을 장애하는 소지장이 있다. 그래서 공성의 지혜를 통달했다는 것은 인무아와 법무아 즉 2무아를 통달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서만이 자신과 남의 고통을 모두 멸하여 없앨 수 있다. 

 

II. 공성의 지혜를 끌어내는 방편

1. 이제의 건립 1) 이제

9:2 진리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세속적인 것과 궁극적인 것이라네.

궁극적인 진리는 범부의 의식 대상이 아니니,

마음은 세속제의 영역이기 때문이라네.

 

세속적인 것은 일반 범부의 마음 경계이며, 궁극적인 것은 성자 근본 지혜의 성인 경계이다. 모든 법에서 우리는 두 종류의 진리를 얻을 수 있다. 한 가지는 진실한 경계를 보는 진제이고, 또 그것에서 허망함을 보는 것은 속제이다. 분별이 있는 심식이 듣고 보는 바의 허망한 경계는 세속제이며, 분별이 없는 심식이 듣고 보는 바의 진실한 경계는 승의제다. 즉 심식이 여전히 분별하고 있다면, 그 분별이 있는 심식이 듣고 보는 바의 경계는 세속제에 머무르는 것이다. 하지만 분별을 여읜 심식이 듣고 보는 바의 진실한 경계는 승의제다. 범부의 견분행상에서 바깥 대상인 산하대지는 모두 진실하게 존재하지만, 깨달은 사람에게 그것은 꿈과 같으며 실재하지 않는다. 승의제는 일반 심식이 인연하는 경계가 아니다.